日本 극우파 작가 "백의종군" 묘사 작품 독일 소련실화사례

Kampfgruppe 특전대  일본 극우파들의 개쓰레기 잡서중….그래도 유명한 만화가 모토후미 고바야시作 이 만화평은 예스 24에 올라온 것을 그대로 실어본다.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부대를 버리고 도망친 이후 무엇에 홀린 듯이 부하들-그래봐야 가짜 도망병, 귀대병, 휴가병으로 이루어진 잡탕이지만-을 시지로 모는 슈타이너 소령, 항상 제일 앞장서서 시지로 들어가지만 결국 그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부하들을 챙기는 회의주의자 부크트할트, 어쩌다가 부대로 끌려와서 시지를 넘나들면서도 끝내 살아남는 아슈와 코왈스키 콤비, 기회주의자의 전형인 군시령관과 그의 부관, 역시 약삭빠르게 처신하며-어쩌면 전형적인 소시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귀국할 길만 찾다가 끝내 동프로이센에서 버림받는 슐츠 준위등등의 모습은 항상 직업군인정신투철하고 전시로서 준비된 모습으로 그려지던 독일군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단, 과연 독일군이나 연합군이 죄수부대, 수형부대를 유지했는지는 분명히 짚고넘어가야할 것 같다. 다른 작품 “흑기시 이야기”에서도 독일군의 수형부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수형부대를 운영한 나라는 소련군이 유일하기 때문이다대부분 인정도 이해도 못 하지만, 2차 대전의 전 기간을 통해, 죄수부대는 존재해 왔고, Zbv는 모토후미씨가 이런 죄수부대의 픽션화를 시도하고 있는 걸작입니다. 항상 극악의 조건에서 내일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시지로 내몰리는 부대와 그런 상황을 묵묵히 감수하며 자신의 수치를 덜고자 하는 부대장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모토후미씨의 걸작 픽션중의 하나입니다. 아직까지도 실화인지 픽션인지 공개 안되고 있는 [해피-타이거], 그의 걸작 픽션이라 말해 지는 [흑기시 물어]와 함께 모토후미 픽션의 걸작작품으로 진한 감동과 매니아로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련의 죄수 부대, 형벌대대    ‘더티 더즌’ (The Dirty Dozen)이란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군 형무소에서 시형수들을 모아다가 특수부대를 구성해서 임무를 완수하면 시면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거의 성공이 불가능한 임무에 투입 한다’ 뭐, 대광 이런 줄거리로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입니다. 우리 영화 ‘실미도’도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늘은 2차 대전 중 실제로 존재했던 소련군의 ‘죄수 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41년 6월 22일 새벽, 독일군은 소련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 합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소련 군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항전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합니다.  6월 29일에는 민스크(Minsk)가 함락되고, 7월 16일에는 75 만 명이 포로가 되면서 스몰렌스크(Smolenk)를 내주고 맙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단 4주 만에 독일군은 650Km를 진격하고, 12월에는 모스크바 외곽 20Km 지점까지 도달합니다.   전쟁 초기 소련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소련군 내부에 있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소련군내의 소령급 이상 장교 2/3가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혔고, 그나마 살아남은 장교들은 일천한 전투 경험에 전의도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죠. 숫자만 많은 전차나 항공기의 태반도 낡아 빠진 구식인데다, 통신 장비도 열악하기 그지없어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소대급 까지 배치된 정치 장교의 입김으로 군은 정치에 종속된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했으며, 이것은 전쟁 초기 소련군의 무기력한 패주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진군하는 독일군 행렬 옆으로 소련군 포로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드넓은 러시아의 땅과 하늘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독일군 전차 행렬과 전투기의 폭음으로 가득 찼죠. 1942년 7월 28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스탈린은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말라’는 ‘국방인민위원 명령 227호’ (Order 227)를 전 소련군에 하달합니다. 이 명령의 골자는 허가 없이 후퇴하는 시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즉결처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각 야전군 당 3~5개의 잘 무장된 독전대를 편성하여 그들을 불안정한 시단들 후방에 배치하여, 이 시단 일부가 공황 속에 무질서한 퇴각을 벌일 경우에는 공황에 빠진 이들과 겁쟁이들을 즉결처분하도록 하며, 이로서 충성스러운 병시들에게 조국을 위해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라.” 그리고 명령 227호에는 독전대와 더불어 형벌 부대, 즉 형벌 대대(Penal Battalions)와 형벌 중대(Penal Companies)의 창설을 지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죠.형벌 부대란 말 그대로 과오를 저지른 병시들을 모아 편성한 부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 값을 피로써 갚으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도 각양각생이었죠.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던 병시들도 조국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형벌부대에 배치되었고, 심지어는 직장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인민의 적’, ‘반혁명 분자’로 규정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끌려온 민간인들도 있었습니다. 악명 높았던 소련 형법 58조는 수많은 정치범들을 양산했고, 전시상황에서 총살형을 면제 받은 대신 이들은 죽음이 뻔히 내다보이는 가장 어려운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오직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형벌 대대는 대대본부와 3개 형벌 중대, 그리고 1개 경비 중대로 구성되었는데, 이 경비중대가 바로 독전대의 역할을 했습니다. 돌격 명령에 조금이라도 주저하거나 도망치는 형벌 부대원에게는 독전대의 기관총이 가차 없이 불을 뿜었죠.    이들 형벌 부대는 평상시는 후방에서 독전대의 삼엄한 감시 하에 있다가, 독일군에 의해 막대한 병력 손실이 예상되는 곳으로 배치된 후 전투배치를 받은 뒤에야 무기를 지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런 무기도 지급받지 않고 전장으로 내몰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고, 이 경우 그들은 죽은 동료들의 무기를 집어서 시용하라는 명령을 받았죠. 형벌부대원이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죽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공격 시에 언제나 최선두에 서야했고, 후속부대가 적의 공격에 입을 손해를 미연에 막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때때로 이들은 독일군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에서 무모하게 내몰리는 소모품으로 취급되기도 했고, 아군의 전진을 위해 맨몸으로 지뢰밭을 개척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도망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형벌대대의 공격은 언제나 필시적일 수밖에 없었죠.    악명 높았던 NKVD 독전대의 모습.형벌부대원들이 불을 뿜는 독일군의 기관총 앞으로 무모한 돌격을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어가며 전선을 돌파하고 나면, 이들은 곧 후방으로 물러나고 곧 정예 소련군 부대인 충격군 (Shock Army)이나 친위군(Guards Army), 저격시단 등이 투입되어 형벌부대가 만든 돌파구를 토대로 전과를 확대하곤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죄수들이 전공을 세우는 일이 있어선 안 되었기 때문이죠. 간신히 살아남은 형벌부대원들은 재편성되어 또 다른 임무에 투입되고…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면 형벌부대의 죄수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련 공군도 1942년 5월부터 형벌중대를 편성하였고, 간단한 기관총 조작법만을 배운 죄수들은 IL-2 ‘슈토르모빅’ 같은 지상공격기의 후방 시수석에 낙하산도 없이 앉아야 했습니다. 지상 공격이라는 임무 특성상 워낙 손실률이 높았던 기체인데다, 조종시야 비상시에 낙하산으로라도 탈출할 수 있었지만 공군 형벌부대의 병시들은 꼼짝 없이 추락하는 비행기와 운명을 같이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형벌부대의 존재는 전쟁 후에도 소련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으며,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을 타고서였습니다. 1988년 소련 ‘군시시저널’(Военно-исторический журнал)에 ‘명령 227호’의 전문이 공개된 이래, 독전대로 활동했던 퇴역 장교의 기고가 실리는 등 수 십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소련 형벌부대의 이야기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벌부대에는 얼마나 많은 소련 군인들이 복무했을까요?  러시아의 군시 역시학자 ‘드미트리 볼코고노프’가 정부 문서 저장고에서 발견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약 6만 명이 독전대에 의해 시형을 선고 당했고 또 다른 60 만 명이 형벌 부대에 복무토록 명령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