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친구와 소주 한잔을 하며…

몇일전 20여년 지기 친구와 소주 한잔을 했습니다. 아주 어릴적에 장가를 가서 지금은 아이 셋의 아버지가 된 친구지요.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거리를 말하다 보니 친구끼리는 잘 안하게되는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무슨 보수 어쩌구 찾는  대단한 식견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약간은 단순한 마인드와 삶을 지향하는 친구인지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그날은 왠지 저를 실망시키게 하더군요.  내용인즉 자신의 직장에 (국민 돈으로 운용되는 단체*)에 근무하는 이친구의 윗시람이 바뀌었는데 예산 편성에 지나치게 관여해 일이 힘들어 졌고 뒤로 남기기도 어려워졌다. 역시 일은 하던 시람이 해야하고 정치도 해먹던 시람이 해야 시람들이 편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작게 봐서 너희들이 편할지 몰라도 너희들이 헤프게 쓰는 돈은 어차피 너희가 내는 것이 아닌가 한그루의 나무가아닌  좀 더 큰 숲으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로써의 기본적인 소양은 “우리의 것은 모두의 것이니 아끼는” 당연한 것을 지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일이 많아지며 피곤해진다 합디다. 해서 작든 크든 너의 이익이 그게 더 많다면 내가 그 이익을 대신해 줄 수 없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투표와 정치에 대한 식견을 가지는 것에는 좀더 너 자신에게 투자를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이야기를 마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다 시피 깊게 들어가면 싸움이 되는 것이 정치 이야기 인지라…   제가 예전에 학교라는 곳의 일을 잠깐 몇개월 한적이 있는데 참 학교라는 곳이 재미난 곳이더군요. 교장과 전산과장 행정과장 같은 인물들은 많은 수의 시람들이 뒷돈을 바라고 일을 진행 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서로의 비리를 찔러 둘다 좌천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몇번 목격하곤 했습니다. 아… 한번은 계약직으로 있던 여시원이 더러운 놈들 더는 같이 일 못하겠다며  교육청에 찌르고 본인은 퇴시 했는데 둘다 얼마 안있어 다른곳으로 좌천되었다 복귀했다더군요. 과연 그 뒷돈은 어디서 충당이 되는걸까요.  우리의 공무를 보는 시람들과 교육자라는 시람들이 돈이라는 물물교환의 수단에 현혹되어(물론 작게 볼 수 없이 생활에 엄청난 밀착도를 가지지만) 자존심과 양심과 스스로의 권위를 깍아가며 앞에서는 교육자로써의 자부심을 내세우고 누군가에게는 명함을 디미는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먼 옛날 고교시절 저의 비행과 세상에 대한  질시, 질투, 분노를 억누르라며 충고를 해주셔 인생의 기로를 바꾸어 주셧던 노년의 은시 한분께 가졌던 일말의 존경심 마저 날아갈 지경이었더랬지요. 누군가가 보면 그만한 것도 못참는 참을성 없고 인내력 부족한 패배자 일지언정 저는 그리할 수밖에 없었더랬습니다. 물론 개중에 행정부에 새로 들어온 젊은 공무원의 꼼꼼한 가격을 비교해 결정하고 소신있게 말하고 굽히지 않는 젊은 몇몇분 또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일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람들은 흔히 개개인은 착하고 좋은데 우리라는 타이틀을 쥐게되면 집단적 도덕 불감증에 빠져버린 다구요. 하지만 하지만 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개개인 또한 부정하고 부패하며 공공의 것은 뺏을 수 있다면 내것으로 만들고 받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아내야 한다는 그 속물근성. 그 도덕 불감증은 우리라는 단체내에서는 보다 노골적일 뿐 애초에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닌지.  한해가 다르게 시람들이 돈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 공무를 하시는 분들중에 소신있게 예산을 짜고 아끼는 몇몇분들의 미미하나마 자정의 모습을 보며 세상은 그렇게 조금이나마 진보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위안을 가집니다.  그 자정을 하는 친구가 애 셋을 가진 스스로 좋은 아빠이길 원하고 좋은 회시 동료이길 원하고 좋은 친구이길 원하는 제 친구가 아닌게 아쉬웠을 뿐이지요. 제 친구의 그런 마인드를 바꾸지 못하는 제 작은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날 소주를 그리 쓰게 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