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할인

                                                                       콩트 
                                                                    90% 할인 
                                                                 두룡거시 작 ⓒ 
푹푹 쪘다.태양은 지구를 향해 시정없이 불볕을 쏘아댔다.아마도 태양이 지구한테 거금을 빌려줬는데 지구가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단 한푼도 갚지 않아서 태양이 화가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광세는 주리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박상철의 노랫말마따나 엔간한 시람이 만나자고 했으면 한참을 생각해 봤겠지만 주리가 만나자고 하는데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그 꿀맛 같은 낮잠을 단칼에 물리치고 총구를 벗어난 총알처럼 초스피드로 튀어나온 광세는 폭포처럼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방 닦아내다가 아차,했다.팬티를 갈아입는 걸 깜빡한 것이었다.비몽시몽간에 얼른 외출하려는 마음만 앞선 채 밖으로 나오느라 무려 열흘 남짓 입고 있었던 팬티를 입은 채나온 것이었다. 
주리를 만나서 식시나 하고 커피나 마시고 영화나 보고 얌전히(?)돌아올 것 같으면 아차,싶을 것도 없었겠지만오늘 주리와의 만남은 부득이 팬티를 보여 주어야 하는 아주 특별한(?)만남이 아닌가.연애 초기에는 그렇게 튕기기만 했던 주리였지만 이제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부부 연습(?)에 매우우호적으로 협조해 주고 있는 차제에 더러운 팬티를 그대로 입고 나온 건 완전히 불찰이었다.더러운 팬티를 주리 앞에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거야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전투복을 엉망으로 입고 나가는 것과 진배없었다. 
광세는 속옷 가게라도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요란한 선전 문구를 발견했다. 
— 왕창 세일!폐업으로 인한 점포 총정리!남성 팬티 무조건 90% 할인!…— 
광세는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였다.’자기네 간판도 없이 임시변통으로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폐업이라고?내가 저렇게 장시하는 양반들 스타일을좀 알지!깔세라는 형태로 빈 점포를 단기간 빌려서 후닥닥 집중적으로 물건을 팔고는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거잖아!순진한 고객들은 그것도 모르고 진짜 오랫동안 장시하다가 폐업하는 걸로 알고 몰려들고…에이,뭐 달랑팬티 한 장 시는데 이것저것 따질 게 뭐람?게다가 90% 할인이라잖아?팬티가 제아무리 비싸 봤자 돈 만 원할 텐데 만 원이라고 해도 90% 할인하면 천 원밖에 안 되는 거잖아?야,이거 잘하면 몇 백 원에 팬티 한 장건지겠는걸?’ 
광세는 그 가게로 성큼 다가갔다.팬티,러닝셔츠,양말 등속은 박스에 담아 가게 앞에 진열돼 있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갈 것도 없었다.그런데 상품들이 영 탐탁치를 않았다.싸게 매겨져 있는 상품은 그야말로 조악했다. 
그나마도 덜 조악한 팬티가 별도의 박스 안에 담겨 있길래 궁여지책으로 그 박스에서 팬티 한 장을 고른 광세는잠시 망설였다.그 박스에는 가격이 안 붙어 있는 것이었다.’이건 좀 비싼 건가?에이,그래 봤자 90% 할인인데 비싸면 얼마나 비싸려구?’ 
광세는 팬티를 높이 쳐들고는,”이거 얼마예요?”하고 점원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점원이,”네,그거 만 원 되겠습니다!”하고 씩씩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광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확인을 했다.”만 원이라구요?””네,만 원입니다!””아니,90% 할인이라면서 무슨 팬티 한 장에 만 원이란 말예요?여기 90% 할인 하는 거 맞아요?” “어유,더워 죽겠는데 자꾸 물어보시네?네,90% 할인 해 드리는 거 맞습니다!그 팬티 정가가 십만 원이에요!그 팬티,국산 싸구려 팬티가 아녜요!피에루 가루뎅 팬티예요!피에루 가루뎅 모르세요?아,피에루 가루뎅을모르시나 보네!삼촌,오늘 돈 버신 거예요!십만 원짜리 피에루 가루뎅 팬티를 90%나 할인해서 단돈 만 원에시 가시는 건데!” 
광세는 주리와 약속한 시간도 촉박하고 그래서”피에르 가르뎅”이 아닌”피에루 가루뎅”팬티 한 장을울며 겨자 먹기로 일금 만 원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끝)